나라사랑티셔츠-8 제작사례

#김구 #나라사랑티셔츠 #일본불매운동 #노노재팬 #노재팬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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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은못했어도불매운동은한다

 

https://canvas-t.com/shop/lovekorea-8/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전개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단일된 힘을 보여주고자 티셔츠를 제작해 보았습니다

앞면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1876~1949) 주석께서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梅雨絲,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

바탕에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 친필 묵서가 쓰여져 있습니다

뒷면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나라사랑 티셔츠’ 를 직접 편집할수 있습니다

디자인의 위치, 문구 등을 수정 가능하십니다 

 

백과사전의 김구 주석


김구(金九, 1876년 8월 29일 (1876년 음력 7월 11일) – 1949년 6월 26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통일운동가, 정치인이다. 의열단체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호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 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2][3] 19세 때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었다가, 37세(1912년)에 거북 ‘구’(龜)였던 이름을 아홉 ‘구’(九)로 바꾸었다.

 

암살

1948년 11월 미·소 양군 철퇴 후 통일정부 수립이 가능하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193] 1949년 1월 한독당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남북협상에 대해서 일부 인사들이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피력하면서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맹약 파괴에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220] 서울에서 조국의 통일을 위한 남북협상을 희망한다고 발언하였다. 같은달 서울 금호동에 ‘백범학원’을 세웠고, 3월 마포구 염리동에 창암학교를 세웠다.[193] 한편 김구는 암살 음모가 꾸며지고 있다는 제보를 접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도 살해하지 못했는데 동포가 어떻게 위해를 가하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경교장에 안치된 김구

1949년 6월 26일, 12시 36분, 김구는 서울의 자택인 경교장에서 육군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총격당하였다.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명동성모병원 원장 박병래는 정모 수녀 등 몇몇 간호수녀들을 대동하고 경교장으로 찾아가 천주교 예식대로 세례를 주었고[221] 베드로 라는 세례명을 받았다.[221] 생전에 성모병원에 입원하였고[221] 당시 수녀들의 권고로 언제든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언약하였다.[222] 며느리인 안미생의 권고도 있었다 한다.[222] 6월 26일 사망하자 성모병원 간호수녀들이 시신을 염하였다.[222]

안두희가 한국전쟁 이후 사면을 받고 군납업체를 운영했기 때문에 권력층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만 될 뿐,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설에는 신성모 국방장관,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장은산 포병사령관, 김창룡소령, 김병삼 대위,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 김성주 서북청년단 부단장, 정치브로커 김지웅 등이 가담하고, 홍종만안두희 등이 하수인이었다는 견해가 있으나 배후는 미궁이다.